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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코끼리 유배] 조선시대 최초의 코끼리 살인으로 유배가다!

by v슈뢰딩거 2020. 9. 18.

 

코끼리 조선으로..

 

과거 조선 초 1411년 태종 이방원은 일본의 4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모치에게 신기한 동물 1마리를 선물로 받게 된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이 동물을 본사람이 없었고 이 동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조차도 몰랐으며, 음식은 조선인 4인가족이 한달을 먹어야 하는 식량을 한번에 먹어 버리고 소나,닭과 달리 어디하나 유용한 구석이 없고 체격만 큰 이 동물 바로 코끼리다.

그럼 일본에는 어떻게 코끼리가 있었을까? 일본은 그 당시 오키나와(류쿠국)과 동남아등 여러 나라들과 중계무역을 하고 있었고, 인도네시아로부터 코끼리를 선물로 받게 된다. 일본은 그 전부터 조선의 대장경 기술을 전수 받기 위해 원숭이도 보내고 조선인 포로들도 풀어주는 등 조선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찰나에 코끼리를 받게 되었고 막상 일본에서도 길러보니 코끼리가 먹는 양이 너무 많아 공물+코끼리 처리를 위해 조선으로 보내게 된다.

 

처음 코끼리를 본 태종과 관리들은 이 동물을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그 당시 말이나 가마를 관리하던 사복시라는 곳에서 코끼리를 가두어 기리라는 명을 하게 되는데, 너무 많은 먹이를 먹는 코끼리를 사복시의 최고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코끼리 살인을 저지르고 유배를 가다

코끼리가 조선으로 온지 1년 공조판서였던 이우라는 사람이 사복시를 찾아 코끼리를 못생겼다고 놀리며 침을 뱉었고, 이우의 행동에 화가난 코끼리는 이우를 밟아 죽이고 만다. 코끼리는 동물치고 제법 똑똑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으며 이우의 표정과 침을 뱉는 행위에서 자신을 모욕한다는 것을 알아채 화가 난것이였다.

 

이 후 조선에서는 최초로 코끼리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데 이 당시의 법에서 사람을 죽이면 응당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또 한 매일 4인가족 한달치의 식량을 소비하는 코끼리는 최고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모두가 코끼리를 사형하고자 한다. 하지만 임금이 코끼리를 너무 사랑하여 전라도 외딴섬 보성 장도로 유배를 보내게 된다.

 

원래 척박했던 장도에서 유배 생활동안 코끼리는 김과 미역만 먹게 된다. 코끼리의 주먹이는 관목이나 나무의 잎을 먹는데 바다의 김과 미역은 코끼리에도 못먹을 음식이였는지 코끼리는 점점 야위어 갔다. 그 때 코끼리 감찰사는 태종에게 "코끼리가 점점 야위어 가며 사람만 보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게 된다.

 

<역사채널 e>

그런 코끼리의 삶이 너무 불쌍했던 태종은 코끼리를 육지로 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라고 명령한다. 그 뒤 코끼리는 2년동안 전라도 육지에서 건강하게 잘 살게 된다. 하지만 코끼리가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 걱정이던 전라도 책임자는 임금에게 전라도의 식량사정이 안좋아지고 있으니 경상도,충청도 등 각지에서 돌아가며 코끼리를 맡자고 건의하게 된다.

 

그 당시 임금이였던 세종은 허락하게 되고 각지에서 돌아가며 코끼리를 기르게 된다. 하지만 충청도 공주에서 코끼리를 기르던 중 노비 1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코끼리가 너무 많은 곡식을 먹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상소문을 세종에게 전하게 된다.

 

하지만 세종은 코끼리를 벌하지 않았고 코끼리를 외딴섬의 물과 풀이 좋은곳에 코끼리를 풀어주어 병들지 않게 관리만 해주라 명한다.

 

이 후로는 코끼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섬에서 잘 먹고 살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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