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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태종 이방원] 조선의 3대왕 이방원의 업적과 삶(feat.왕자의난..)

by v슈뢰딩거 2020. 9. 16.

 

조선의 3번째 왕 이방원(1,2차 왕자의난)

태종은 이성계의 5번째 아들로 이름은 이방원 자는 유덕이다. 이방원은 아버지나, 형들과 다르게 무예도 좋아했지만 학문을 더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사시에도 합격하여 밀직사대언이란 직책으로 관직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이방원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을때 이성계나 어머니인 신의왕후 한씨가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당시 이성계를 도와 개성으로 같이 진군하여 (구)고려의 세력들을 소탕하였으며 고려말기 고려내의 개혁파와 온건파의 대립 중 아버지인 이성계가 말에서 낙마하여 치료를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온건파의 수장이였던 정몽주의 주도하에 개혁파를 숙청하려 하였다. 이를 눈치챈 이방원이 아버지를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와 해당 사건을 막을 수 있었고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려고 한다.

 

이성계는 신의를 지키려 하였으나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처단하고 온건파를 숙청하여 개혁파인 신진세력들의 입지를 다지게 하는 등 조선의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렇게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게 되고 세자를 책봉함에 있어 이방원이나 신의왕후의 자식들 중 하나가 아닌 11살의 배다른 동생인 이방석을 세자책봉하게 된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것은 강력한 신권을 꿈꾸던 정도전과 강력한 왕권을 원하던 이방원의 전쟁을 의미하였고 이는 결국 1차 왕자의난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어 정도전과 방석,방번을 제거하게 된다. 1차 왕자의난 이후 형인 정종이 2대 조선의 왕이 되었고 이후 발생된 2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은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어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임금이 된다.

 

 

태종 이방원의 업적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들을 죽이고,대립했던 조정대신들을 죽이는 등 피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것과 다르게 이방원은 자기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백성들을 사랑했으며 올바른 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는 왕위에 올라 강력한 왕권강화와 유교정치,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온힘을 다했다. 대표적인 왕권강화 활동으로는 왕실 외척과 종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켰으며, 6조를 관장하던 의정부를 독자적 기구로 개편하고 6조 직계제를 실시 하였다.

 

그리고 신권의 견제를 위해서 낭사를 사간원으로 독립하여 대신들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였으며 공신들의 사병을 의흥삼군부로 집중시켜 임금이 병권을 장악할 수 있게 하였다.

 

경제적 안정화를 위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양전사업을 실시하고 양안과 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호패법을 실시하여 16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호패 착용을 의무화 하였는데 이는 토지대장과 인구조사를 통해 정확하게 세금을 걷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였다. 

또한 태종은 백성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한일을 당한 백성들이 없도록 하였으며 정종때 부터 실시하던 <노비변정도감>을 지속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된 자들도 해방 시켜주었다.

이런 이방원은 1418년 자신의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으며 후에도 정치와 병권을 놓치 않고 지내다.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방원 비하인드 스토리

 

1. 태종 이방원은 사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전해지며, 대신들 몰래 사냥을 가서 대신들과 자주 싸우기도 하였다. 그럴때 마다 그는 "나는 무인 출신이다. 무인이 활을 쏘고 사냥을 함이 마땅한데 그대들은 어찌 이리 잔소리만 하는가"라고 하여 대신들과 이 일로 자주 싸웠다 한다.

 

2. 관리로 지낸 7여년은 세월은 이방원이 나라를 다스리고 대신들을 관리하며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3. 태종 이방원은 자식들을 무척이나 아꼇다고 전해진다. 첫째인 양녕대군은 공부를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는데 많은 조정대신들이 왕세자를 폐위하자고 하였으나, 자신의 자식들은 형제들끼리 피로써 싸우지 않게 하려고 첫째에게서 왕세자위를 폐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고기를 좋아하는 세종이 자신이 죽을 시 3년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면 건강이 상할까 자신의 3년상 동안 세종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하였다 한다.

4. 이방원에게는 원경왕후 민씨로부터 낳음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인 양녕대군은 너무 방탕하여 왕세자를 폐위당하였고, 둘째인 효령대군은 불교에 의의하여 스님이 되어 셋째인 충녕대군이 4대 임금이 됨.

 

 

5. 거북선은 이순신장군이 만들었다기 보다 태종 시절에 처음으로 언급이 되었으며 이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5. 이방원의 강력한 왕권의 확립은 후에 세종대왕이 왕이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태종이 없었다면 '훈민정음'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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