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부동산 폭등, 조선시대 한양 집값 지금 강남이랑 비슷한 수준

v슈뢰딩거 2026. 6. 11. 01:14

집값 얘기 진짜 안 끝나잖아요. 어제도 회사 동기랑 점심 먹다가 그 얘기 나왔어요. "강남 30평 아파트 30억인 게 말이 되냐" "내 평생 모아도 못 산다" 같은 얘기. 다들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요.

 

근데 자료 좀 뒤져보니까 좀 충격적인 게 있었어요. 조선 후기에 한양 인사동(지금 종로 인사동 그 자리) 최고급 집값이 정9품 관료 녹봉의 50년치였대요. 평민 입장에선 평생 모아도 못 사는 가격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한양 부동산 가격은 중종 이후 500년 동안 잡힌 적이 없다는 말이 있어요.

 

이 자료 보면서 좀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겪는 부동산 문제가 600년 전 한양 사람들이 겪던 거랑 거의 똑같거든요. 이전 글 조선시대에도 부동산 투기로 노비도 땅을 사고팔았다 에서는 시장 거래 측면을 다뤘는데, 오늘은 진짜 집값이 얼마였고 양극화가 어땠는지 한번 들여다볼게요.

 


처음엔 한양 집을 공짜로 줬어요

 

조선 개국이 1392년인데, 그때 한양은 거의 신도시였어요. 고려 수도가 개경(지금 북한 개성)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새 수도로 사람들 끌어오기 위해 정부가 어떻게 했냐.

 

한양의 토지를 무상으로 분급했어요. 진짜로요. 개경 사람들한테 "한양 오면 땅 공짜로 줄게" 라고 한 거예요. 양반이든 평민이든 신분에 따라 일정 평수씩 받았어요. 지금 식으로 비유하면 세종시 처음 만들 때 "오면 아파트 공짜로 준다" 라고 했던 거랑 비슷한 정책이에요.

 

그런데 이 좋은 시절이 진짜 짧았어요. 100년도 안 가서 한양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합니다.

 

원인은 단순해요. 인구가 폭증했거든요.

  • 1392년 조선 개국: 554만 9천명
  • 1440년 세종 22년: 672만 4천명
  • 1519년 중종 14년: 1,046만 9천명

127년 만에 인구가 거의 두 배. 그 사이 큰 전쟁도 없었고 농업 생산이 늘면서 인구가 자연 증가한 거예요. 그러면 한양 인구도 같이 늘었겠죠. 한양은 도시 면적이 정해져 있는데 살고 싶은 사람은 계속 늘어나니까,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한양 집값이 얼마나 미쳤냐면

조선 후기 기록 보면, 한양에서 가장 비싼 집(인사동 일대)이 2만냥에 거래됐대요. 같은 시기 지방에서 가장 비싼 집은 1천냥. 한양이 지방보다 약 20배 비쌌어요.

 

이게 어느 정도 충격적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정9품 관료(가장 낮은 직급) 녹봉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이래요.

 

  • 인사동 최고급 집: 정9품 녹봉의 50년치
  • 새 개발 지역 집: 정9품 녹봉의 2년치

같은 한양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25배 차이가 났어요. 지금 강남이랑 외곽이 5~7배 차이 나는 것보다 양극화가 훨씬 심했던 거예요.

 

그리고 진짜 부촌이 어디였냐. 청진동, 공평동, 인사동. 지금 종로 그 지역이에요. 광화문 근처. 거기 살면 다른 한양 지역 사람의 3~4배 자산을 가진 거였어요. 지금 강남 사는 사람이 강북 사는 사람보다 평균 자산 3~4배 많다는 통계랑 거의 똑같아요.


"남산골 선비" 라는 말의 진짜 의미

이거 들어보셨어요? 남산골 선비. 무능하고 가난한 양반을 비하하는 표현이에요.

 

근데 이게 어디서 나온 말이냐 하면, 남산골 = 한양에서 집값 싼 동네였어요. 지금으로 치면 "월세 살이 직장인" 같은 의미예요.

조선시대에도 이미 사는 동네가 신분을 결정했어요. 청진동·공평동·인사동에 살면 "있는 양반", 남산골에 살면 "가난한 양반". 같은 양반이라도 위치 따라 사회적 평가가 달랐어요.

 

집 위치로 그 사람 출신과 능력을 가늠하는 풍조까지 있었대요. 지금 우리가 "강남 살아요" 하면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랑, "도봉구 살아요" 하면 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다른 거. 그게 600년 전에도 있었던 거예요.

 

이런 차별 인식이 또 부동산 가격을 더 올렸어요. 좋은 동네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가격이 올라가니까요. 인사동 살면 인정받고, 남산골 살면 무시당한다고 하면, 가능한 사람들은 다 인사동 가려고 하잖아요. 그게 인사동 집값을 또 50년치 녹봉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여가탈입"이라는 진짜 황당한 제도

조선시대 부동산 자료 뒤지다가 발견한 건데, 여가탈입(閭家奪入) 이라는 게 있었어요. 이게 뭐냐.

 

지방에서 한양으로 발령받은 관료가 한양에 집이 없잖아요. 그러면 평민 집을 강제로 빼앗아서 살 수 있었어요. 합법적으로요. 이게 진짜 황당한 제도인데, 사실상 있었어요.

 

물론 보상은 일부 있었어요. 진짜 공짜로 뺏은 건 아니고,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강제 매수하는 식. 그런데 그 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낮았어요. 그러니까 평민 입장에선 강도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이게 어떤 폐해를 낳았냐 하면, 지방에서 양반 관직자가 올라온다는 소문만 돌아도 사람들이 미리 도망갔어요. 자기 집 뺏기기 싫으니까요. 영조 시기에는 이게 너무 심해져서 "단신으로 상경한 지방 관직자는 여가탈입 대상에서 제외" 한다는 명령이 내려질 정도였어요.

 

이게 지금 보면 황당한 제도지만, 본질적으로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자산 빼앗는 시스템"이었어요. 지금 다주택자가 갭투자로 1주택자 매물 다 흡수하는 거랑 본질이 같아요. 합법적인 약탈이에요.

 

이전 글 조선시대 양반들 노후 준비 에서도 비슷한 패턴 다뤘는데, 시스템이 약자한테 불리하게 설계되면 결국 자산이 위에서 위로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600년 전이든 지금이든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조선 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냐

답은 단순해요. 대부분 못 샀어요. 평생 셋방살이했어요.

 

조선 후기 기록 보면, 한양 인구의 70~80%가 자기 집이 없었다는 추정이 있어요. 대부분 셋방살이거나, 친척집에 기거하거나, 산 밑에 막사 짓고 살거나.

 

흥미로운 케이스 하나. 지방에서 한양으로 발령 난 관료들 보면, 가족은 고향에 남겨두고 본인만 올라와요. 그리고 한양 친척집이나 정부 관사에서 머물러요. 이유? 한양 집 못 사거든요. 가족 다 데려오려면 집 사야 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평생 못 사는 거예요.

지금 직장인이랑 진짜 똑같지 않아요? 지방 출신이 서울 와서 일하는데, 집값 너무 비싸서 가족 못 데려오고 혼자 사는 케이스.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은 거의 똑같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한테 주는 교훈은

조선 한양 부동산 자료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부동산 양극화는 어쩌면 인간 사회의 자연 법칙 같은 거라는 거.

 

왜냐. 패턴이 너무 똑같아요. 신도시 만들면 처음엔 싸게 풀려요. 인구 늘면 폭등해요. 위치에 따라 양극화 심해져요. 부자 동네 살면 인정받고, 가난한 동네 살면 무시당해요. 합법적 시스템으로 자산이 위로 흘러가요. 평민은 대부분 셋방살이로 평생 살아요.

이게 조선 한양 600년 전 이야기예요. 그리고 지금 서울 이야기이기도 해요.

 

근데 한 가지 차이가 있어요. 조선 사람들은 이걸 받아들이고 살았어요. 신분제 사회였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평민이 인사동 살 꿈도 안 꿨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르죠. 누구나 강남 살 수 있다고 믿는 사회예요. 신분제도 없으니까요.

 

근데 현실은 비슷한 양극화가 계속되고 있어요. 그래서 더 답답한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격차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거든요.

월세마저 올라버림...

이전 글 전세 vs 월세, 돈으로 따져보기 에서도 다뤘듯이, 결국 무주택자가 자산 형성하려면 시간을 본인 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작년에 강남 30억이었던 거 올해 40억으로 갈 수도 있고, 25억으로 내릴 수도 있어요. 그 시점 맞추겠다는 욕심 버리고, 본인 페이스대로 자산 모으는 게 답이에요.


그래서 본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조선시대 양반들이 가진 거 다 팔아서 인사동 집 산 케이스 보면, 가산 다 들어갔는데 한 번 정치적 풍파 만나면 그 집 다 잃었어요. 100% 자산을 한 곳에 베팅하는 게 진짜 위험해요.

 

그래서 추천하는 건 분산 접근이에요.

  1. 비상금 (생활비 6개월치) — 일단 안전망부터
  2. 연금저축·IRP — 세제혜택 우선
  3. ETF 적립식 — 미국 + 한국 분산
  4. 그 후에 남는 돈으로 부동산 천천히 준비

지금 한 번에 강남 살 욕심 버리고, 외곽 작은 평수부터 시작하시는 게 정답일 수 있어요. 600년 전 한양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어요. 처음엔 남산골에 살다가, 자산 좀 모으면 다른 동네로, 그러다 운 좋으면 청진동 근처로. 우리도 비슷해요. 처음부터 강남 영끌은 진짜 위험한 베팅이에요.

 

이전 글 환율 1,550원 시대 에서도 다뤘듯이, 한 가지 자산에 100% 베팅하는 건 위험해요. 부동산도 마찬가지예요. 분산이 답이에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

조선 한양 부동산 자료 마지막에 진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어요.

 

"중종 이후 500년 부동산 가격이 잡힌 적이 없다"

이게 거의 1500년부터 지금까지 500년 넘게 한국 부동산은 계속 올랐다는 뜻이에요. 정부가 규제 해도, 정책 바꿔도, 세제 개편해도, 결국 못 잡았어요.

 

왜 그럴까요. 한 칼럼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인간 행동은 비슷하다.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좋은 곳에 살고 싶은 욕망, 자산 늘리고 싶은 욕망,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욕망. 이게 부동산 가격을 만드는 진짜 동력이에요. 제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그러니까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본인만 못 사는 게 아니에요. 600년간 평민 80%는 셋방살이 했어요. 그게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다만 그 시대 사람들이 하지 못한 걸 우리는 할 수 있어요. ETF, 연금저축, 달러 자산, 미국 주식. 이런 도구들이 있잖아요. 조선시대 평민은 진짜 답이 없었어요. 본업 외에 자산 늘릴 방법 자체가 없었거든요.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부동산 못 사도 다른 자산으로 충분히 노후 만들 수 있어요. 그게 600년 만에 우리한테 주어진 기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