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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감자대기근]아일랜드의 근대 역사상 최악의 기근

by v슈뢰딩거 2020. 8. 22.

1841년부터 1851년까지 10년동안 대체 무슨일이 발생 하였길래 아일랜드에서 수십만명의 농부들이 굶어 죽어 버렸을까? 이당시 에메랄드 섬이라고 불리웠던 아일랜드에서 전체 인구의 20%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의 대 기근은 인간에게 닥친 비극적인 재앙이였고, 아일랜드의 해안선을 넘어 유럽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굶주린 농부들은 아일랜드를 대거 탈출하게 되었고, 그중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며, 미국의 거대한 이민 행렬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그럼 유럽근대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라고 불리우는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에 대해서 알아보자.

 

<토이스토리 감자!>


아일랜드와 감자


유럽에서 감자를 가장 먼저 식용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아일랜드다. 당시 유럽인들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감자라는 작물을 발견하여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아일랜드는 감자가 자라기 좋은 최적의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당시 영국인들의 지배에서 빈곤과 가난이 거듭되던 아일랜드인들에게 다른 곡물들보다 쉽게 잘 자라고 생산량이 월등한 감자야 말로 신이 주신 작물이였다.

 

 

이 당시 유럽인들의 주식은 빵이였는데 빵과 달리 감자는 굽거나, 삶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아일랜드인의 식탁은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였으며 아일랜드에는 수많은 감자요리가 많다. 빵으로는 포테이토롤을 먹고 사이드로는 으깬감자와 박스티라고 부르는 감자를 팬케이크처럼 구운요리와 감자 베이컨등 엄청난 요리도 많다. 그런 감자는 당연히 아일랜드의 주요 작물이였고, 여러세대가 지나는 동안 농사는 잘 되었다.


감자대기근(1841년~1851년)


1841년 한번도 농사에 실패한적 없던 감자에 역병이 퍼지고 있었다. 그 당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은 다른 식량원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감자역병이 발생하자 대규모의 기근이 발생해 버렸다. 그리고 이 당시 감자역병과 동시에 전염병도 창궐하였는데 굶주림을 겪고 있던 이들도 전염병에 의해 많은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그 당시 아일랜드의 인구는 800만명 정도였는데 대기근으로 인하여 20%가 넘는 인구가 죽게 되었으며 현재는 650만명으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이 기근을 피하기 위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조상도 이 시기에 건너온 아일랜드 인이다.

 

 

그리고 문제가 더욱 심해진 것은 당시 기근이 발생하였을 때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영제국에 속해 있었는데, 영국인들과 그당시 아일랜드의 지주들로 인해 기근이 더욱 심해졌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기간에 흉작인 작물은 오직 감자뿐이였는데 소작인들이 굶어 죽어가는중에도 밀,보리,귀리 등 영국으로 보내는 식량은 풍작이였다. 그런 수많은 작물들을 가져가며, 대부분의 아일랜드 인들이 굶어 죽을때에도 영국에서 지원한 것은 오로지 미국산 옥수수를 실은 배한척뿐이였다.

 

 

당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겸손한 제안>에서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의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였다. 영국 정부가 식량을 제때에만 보내주었어도 아일랜드인들이 그렇게 굶어 죽진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살아 남기 위해 아기들도 잡아 먹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돌기도 하였다. 

 

 

현재에 들어서 그당시 감자 대기근의 원인을 찾게되었는데 범인은 바로 '파이토프토라 인페스탄스'라는 곰팡이와 비슷한 단세포 생물 이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 감자 잎마름병을 유발하던 US-1이 남아메리카 페루에서 아일랜드로 들여오던 구아노 비료에 묻어 온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일랜드 농민들은 감자 수확량 증가를 위해 바닷새의 배설물로 만든 비료를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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