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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넬슨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by v슈뢰딩거 2020. 8. 12.

<네이버참조>

넬슨만델라는 백인 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흑인변호사이다. 감옥에서 27년을 보낸뒤에 1994년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된 만델라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하며 흑인과 백인사이의 대립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정치를 은퇴후에도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2013년 12월 돌아가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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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인들의 지배에 대항해 싸웠고 그리고 흑인들의 지배에 맞서 싸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 속에서 함께 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이것이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이상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며 이루고 싶은 목표 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그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넬슨 만델라, 1964년 반역죄 재판에서

■ 넬슨만델라 감옥에 갇히다.

넬슨만델라는 1964년에 반역죄로 사형을 면한 무기징역을선고 받고 케이프타운 인근의 섬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46세였으며 죄명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내란을 조직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파르트헤이트는 '분리'를 뜻하며 이시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3/4이상을 차지하던 흑인들은 소수의 백인들보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열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 감옥에서 조치 무너지지 않은 그의 결의.

감옥은 만델라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조치였다. 만델라는 매일매일 채석장으로 끌려가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고, 일년에 딱 1번만 그것도 한사람의 면회만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좁은 감방에서 전등을 끄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매일 불을 키고 잠에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넬슨만델라는 굴복하지 않았고 감옥안에서 아프리카 국민회의를 지속 해서 이끌었다. 만델라의 변하지않는 결의는 간수들마저 존경하게 되었다.이런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게 되면서 넬슨만델라는 남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의 흑인들에게 영웅이 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의 불공평성에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게 되었다. 소수의 백인에 의해 지배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한다. 그리고 넬슨 만델라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1994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 국민통합을 이룬 대통령.

 

대통령이 된 만델라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국민 통합이였다.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자 가난한 흑인들은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의지하려 했고, 백인들은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며 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이런 시기에 넬슨만델라는 럽비경기를 통해 국민들을 단합하려 했다. 그래서 럭비 선수들을 격려하여 영연방을 상대로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게 되었다. 이기적과도 같은 승리는 남아공 국민에게 잊지 못할 경험은 선사했고, 흑&백이 하나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것은 또한 영화'인빅터스'로 만들어 지게 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 아파르트헤이트

 

* 아파르트헤이트는 1960년대 이전까지 미국 남부에서 행해졌던 분리 정책과 비슷한 제도이다. 인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의 일상생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서로 다른 인종끼리는 결혼이나 성관계도 금지되었고, 모든 시설과 장소가 인종에 따라 분리 되었다.

 

* 백인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있는 흑인들은 화장실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고, 도서관에서는 백인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고 한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종에 따라서 거주지역부터 학교,직업까지도 출생과 동시에 결정지어졌다. 이런 지독한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남아공은  올림픽에 출전 할 수 없었고 199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되서야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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