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민란은 대개 못 살겠다는 외침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이 봉기는 조금 다릅니다. 주도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던 농민이 아니라 글을 읽은 양반과 지식인이었고, 이들이 내건 명분도 세금이 아니라 차별이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였는지 정리했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무엇일까
1811년, 순조 11년에 시작해 이듬해까지 이어진 봉기입니다.
→ 주도한 인물은 홍경래와 우군칙 등
→ 무대는 평안도, 지금의 평안북도 일대
→ 규모는 한 고을 민란이 아니라 여러 고을을 장악한 대규모 항쟁
흔히 평안도 농민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한 지역의 불만이 무장 봉기로 번지고 관군과 정면으로 맞선 사건이었습니다.
왜 평안도였을까
지역이 핵심입니다. 평안도는 조선 후기에 경제적으로 성장한 지역이었습니다. 청과의 무역로에 있었고 광산이 많아 사람과 돈이 모였습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정치적 지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평안도 출신은 과거에 합격해도 중앙의 요직으로 올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서북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인식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봉기군이 내건 격문에 그 불만이 그대로 나옵니다. 지방 차별에 반대하는 평안도 몰락 양반과 토호들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돼 있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 그것이 이 봉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누가 함께 싸웠을까
구성이 독특합니다.
→ 몰락 양반과 평민 지식인이 기획하고 지휘
→ 살던 곳을 떠나 떠돌던 유민층이 병력으로 합류
→ 평안도에 많던 광산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참여
광산 노동자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이들은 이미 한곳에 모여 집단으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흩어진 농민을 모으는 것과 달리, 이미 조직된 집단이 그대로 병력이 됐습니다. 광업이 발달한 지역이 아니었다면 이 규모는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즉 이 봉기는 조선 후기의 경제 변화가 만들어 낸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상업과 광업으로 돈이 돌면서 생긴 새로운 계층이, 그에 맞는 대우를 요구한 것입니다.
정주성에서 넉 달을 버텼다
봉기군은 초반에 여러 고을을 빠르게 장악합니다. 그러나 전열을 갖춘 관군이 반격하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정주성으로 들어가 농성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넉 달을 버팁니다. 관군의 포위 속에서 성문을 닫고 넉 달을 견딘 것인데, 준비 없이 모인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최후는 관군이 성벽 아래에서 화약을 터뜨려 성을 무너뜨리면서 끝났습니다.

진압은 됐지만 이 넉 달이 남긴 인상은 컸습니다. 나라가 한 지역의 봉기를 넉 달 동안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사건이 남긴 것
홍경래의 난은 세도정치가 한창이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몇몇 가문이 관직을 나눠 갖던 그 구조가 평안도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열리지 않는 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난이 끝난 뒤에도 원인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차별도, 수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50년 뒤 전국 70여 고을에서 농민들이 동시에 들고일어나는 임술농민봉기가 터지는데, 그 사이에 조정이 구조를 손본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상평창처럼 백성을 돕기 위해 만든 제도마저 이 시기에는 수탈 수단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홍경래의 난은 1811년 홍경래와 우군칙 등이 평안도에서 일으킨 대규모 봉기입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했으나 정치적으로 차별받던 지역의 불만이 원인이었고, 몰락 양반과 평민 지식인이 주도하며 유민과 광산 노동자가 합세했습니다.
정주성에서 넉 달을 버텼으나 성이 무너지며 진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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