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값은 농경 사회에서 물가 그 자체였습니다. 풍년이면 값이 폭락해 농민이 손해를 보고, 흉년이면 폭등해 도시 사람이 굶었습니다.
이 진폭을 국가가 직접 줄여 보겠다고 만든 것이 상평창입니다. 발상은 지금의 물가 안정 정책과 다르지 않은데, 결말은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정리했습니다.
상평창은 무슨 뜻일까
이름에 기능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상평(常平)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준말로, 항상 고르게 유지한다는 뜻
→ 창(倉)은 창고
합치면 값을 늘 고르게 유지하기 위한 창고가 됩니다. 조선의 대표 화폐인 상평통보에도 같은 두 글자가 들어갑니다. 항상 고르게 통용되는 보배라는 뜻이니, 화폐 이름에까지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가 새겨져 있었던 셈입니다.

어떻게 물가를 잡았을까
원리는 단순합니다.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것입니다.
→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떨어지면 관에서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임
→ 흉년이 들어 값이 오르면 창고에 쌓아 둔 곡식을 싸게 풀어놓음
농민 입장에서는 풍년에도 헐값에 넘기지 않아도 되고, 도시 사람은 흉년에도 감당할 값에 살 수 있습니다. 국가가 곡물 시장의 완충 장치가 되는 구조입니다.
설치는 고려 성종 12년, 993년입니다. 개경과 서경, 그리고 지방 12목에 세웠습니다. 규모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포 32만 필로 쌀 6만 4천 섬을 사들여 밑천으로 삼았고, 그중 5천 섬은 경시서에 두었다가 때를 봐서 사고팔았습니다.
조선도 이 제도를 이어받습니다. 세조 대에는 농사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 정비되기도 했습니다.
의창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비슷한 시기에 의창이라는 기관도 있었습니다. 이름이 헷갈리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 상평창은 물가 조절 기관. 사고팔아서 값을 안정시킴
→ 의창은 빈민 구호 기관. 굶는 사람에게 곡식을 나눠 주거나 빌려 줌
하나는 시장을 상대하고 하나는 사람을 상대합니다. 기원이 된 중국 제도도 다르고 설치 시기도 달랐습니다. 상평창이 곡물 값을 다루는 경제 기구라면 의창은 복지 기구에 가깝습니다.
왜 고리대가 되었을까
문제는 두 기능이 섞이면서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며 상평창이 의창의 역할, 즉 곡식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환곡 업무까지 떠맡게 됩니다. 사고파는 기관이 빌려주는 기관을 겸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이자가 붙습니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빌려준 곡식에 10%의 이자를 걷었습니다. 명분은 보관 중에 줄어드는 양을 메운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지방 재정을 채우는 수입이 됐습니다.
한번 수입이 되고 나면 방향이 뒤집힙니다. 값을 안정시키려고 곡식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걷으려고 곡식을 억지로 빌려주게 됩니다.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떠안기고, 되를 속이고, 장부를 조작하는 관행이 여기서 자랍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만든 창고가 백성의 재산을 빼앗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을까
이 변질이 조선 후기 최대의 문제로 자랍니다. 19세기의 삼정의 문란 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이 바로 환곡이었습니다.
결과는 폭발이었습니다.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된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졌고, 조정은 삼정이정청을 세워 환곡을 아예 폐지하고 토지에 세금을 매기자는 개혁안까지 내놓습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백지화됩니다.

5년 뒤 흥선대원군은 다른 방식을 택합니다. 사창제입니다. 관청이 개입하면 반드시 변질된다는 판단 아래, 곡식 창고를 아예 마을로 내려보내 주민이 직접 운영하게 했습니다. 993년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겠다며 세운 창고가, 874년 뒤에는 국가를 빼는 방식으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상평창은 물가를 항상 고르게 유지한다는 뜻의 국가 곡물 창고로 993년 고려 성종 때 설치됐습니다.
풍년에 사들이고 흉년에 풀어 값을 조절하는 방식이었고, 빈민 구호 기관인 의창과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환곡 업무를 겸하고 이자를 걷기 시작하면서 고리대로 변질됐고, 이것이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 같이 보면 좋은 글
→ 상평통보 뜻과 가치, 조선을 움직인 엽전 이야기
→ 사창제 뜻과 시행 배경, 환곡의 폐단을 마을에 넘긴 흥선대원군의 개혁
→ 삼정이정청 뜻과 설치 배경, 임술농민봉기가 만든 두 달짜리 개혁 기구
→ 대동법 뜻과 시행 배경 정리, 조선을 바꾼 100년의 세금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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