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자들은 오귀스트 로댕을 사실주의적 인간 형상을 만든 마지막 위대한 조각가라 평가한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로댕은 예리한 관찰력을 통해 정지한 조각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또한 그는 돌과 청동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구성에 흠이 있다 하여 '고기덩이의 단편'에 머물렀다는 비평도 받은바 있다. 오귀스트 로댕은 1917년 뫼동의 주택에서 사망하게 되고 그의 주거 및 전재산은 미술관을 개설한다는 조건으로 국가에 기증되어 1916년에 국립 로댕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된다.
오귀스트 로댕의 성장
오귀스트 로댕은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는 하급관리의 아들로 14세에 파리 프트 에콜 학교에서 3년동안 드로잉 및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퇴직으로 파리 미술원에 들어가지 못하여 공예가, 도자기 화가, 보석세공인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게 된다. 1864년에는 알베르 에르네스트 카리에 벨뢰즈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같은 해 자연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로댕의 첫작품인 <코가 부러진 사나이>를 완성 하였다.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사실적 묘사가 그당시 심사위원에게는 미완성은 작품으로 보여 낙방하게 된다. 1870년에는 카리에 벨뢰즈를 따라서 브뤼셀로 갔고 이곳에서 7년간 건축장식 직공으로 일하며 유럽의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게 된다. 이 당시 이탈리아를 방문한 로댕은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 그리고 고대 로마의 다양한 조각품들을 접하게 된다.
이 여행은 로댕의 예술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 후 돌아온 파리에서 <청동시대>를 만들었다. 이것은 너무나 사실적이여서 살아있는 모델에서 석고형을 뜬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특히 로댕은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많이 받은 탓에 그의 작품들을 많이 모방하기도 했다.
파리의 위대한 조각가 로댕
<청동시대>이 후 로댕은 1880년대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식미술 박물관의 문을 청동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는 로렌초 기베르티가 만든 유명한 피렌체 세례당 <천국의 문>, 단테의 신곡인 <지옥편> 두곳에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문>을 제작하였다. 이 지옥의 문은 180개 이상의 형상은 본떴고 30년 동안 작업했지만, 그가 사망할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1888년에는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도 조각하게 되는데 이는 <지옥의 문>에서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와 로댕에 의해 실물 크기보다 더 크게 제작된 조각상이다. 또 한 이 조각상은 오른쪽 팔꿈치가 왼쪽 대퇴부 위로 교차 하듯 자연스럽지 않은 인체의 비튼 자세와 근육을 강조시킨 표현주의적인 묘사는 대상의 진지하고 고뇌에 빠진 심리적 분위기를 대중들에게 잘 전달 하고 있다. 또한 조각상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891년에는 소설가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는 발자크의 사진을 모으고 주변인들에게 취재하고, 그의 주변 모든것들에 대해 조사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전통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에 로댕은 "나의 원칙은 형태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응대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1895년 여러 대학들로부터 명예학위를 받게 되었으며 이후 파리의 비롱의로 거처를 옮겼는데 현재는 이곳이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세계에서 로댕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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