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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

[태조 이성계] 조선건국 고려를 뒤로한 새로운 국가 - 1 (feat.고려의몰락과 정몽주)

by v슈뢰딩거 2020. 9. 10.


고려말기 국 내,외 정세와 이성계


1330년~1374년 공민왕은 원으로부터 자주 독립을 위해 원을 배척하는 정치를 펼쳐왔다. 공민왕은 신원세력을 숙청하고 신진사대부를 등용하는등 고려를 원에서부터 독립하여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개혁들을 진행하였고, 이때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지고있던 무관 세력으로는 최영장군과 이성계가 있었다. 

 

 

1350년 부터 이성계는 쌍성총관부 공격을 시작으로 원나라 말기에 생긴 홍건족에게서 북쪽을 남으로는 우리나라를 처들어 오던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며, 많은 업적을 세웠다. 그리고 신흥 무인세력이였던 이성계는 신궁에 가까운 활솜씨로 홍건족과 외적들을 물리치며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이성계의 활솜씨는 200미터 ~ 300미터의 거리에서 쏜 활로 적군의 투구를 맞추고, 솔방울도 맞출 수 있는 실력이였다. 이런 그의 명궁 솜씨는 크고작은 전투에서 적장들을 요격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게 된다.

 

그의 명궁에 얽힌 설화중에는 공민왕의 앞에서 활쏘기를 시합을 하였는데, 원나라에서 온 장수와 시합을 하게 되었다. 원나라의 장수는 처음 50발 가량을 표적에 명중시키고 이후에는 표적을 잘 못맞췄으나 이성계는 몇백발의 화살을 쏘아도 표적에 다 맞추었다 한다.

 

이런 이성계는 그가 전투에 참여했던 30년동안의 전투에서 패한 기록이 거의 없어 고려 백성들에게 난세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고려의 몰락


당시 원나라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는데, 가난한 농민 출신이였던 주원장은 홍건적과 여러 반란군들을 통합하여 1368년 명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명나라는 내부를 다지며 고려에 원래 원나라의 영토였던 철령 이북땅과 동,서의 영토들을 요구하며, 많은 공물을 요구하였다.

 

이당시 고려에서는 이북땅을 내준다는것이 너무 불합리한 요구였기 때문에 고려는 크게 반발하게 되고 요동정벌을 명령하게 된다. 1388년 5월 이성계와 조민수는 5만의 군을 이끌고 요동정벌을 나선다. 하지만 위하도 까지 진격하였던 이성계와 조민수는 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널 수 없어 철병요구를 했고, 고려정부에서는 이를 거부하게 되었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이대로 요동정벌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생각하고 회군을 결정하게 된다.

 

이당시 회군은 군법을 어긴 것으로 회군시 큰 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이성계와 조민수는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고려에서는 이성계와 조민수의 회군 및 반란에 대응해 싸우게 되었지만 이성계가 이끄는 5만의 군대는 그당시 최고의 정예부대 였기 때문에 고려의 우왕군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반란에 성공하게 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 왕이였던 우왕을 폐위시키고, 최영장군을 유배 보내게 된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후계를 정함에 있어 공양왕과 창왕으로 의견이 갈리게 되었으나 이성계가 지지했던 공양왕이 제20대 왕이 되게 된다. 창왕을 지지했던 조민수는 유배보내지게 되고 창왕은 제거당하게 된다.

 

 

이런 반란의 과정에서 이성계는 역성혁명(나라를 바꾸는 일)의 야욕을 가지고 되는데, 그건 그당시 고려의 정치인이였던 정도전의 영향이 컸을것이다. 이 당시의 고려는 나라를 완전히 바꾸자는 이성계를 주축으로 하는 이성계와 내부에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바꾸자는 온건파의 정몽주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개혁파가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막강했었는데, 이성계가 낙마를 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요양을 떠난사이 정몽주의 온건파에서 개혁파 사람들을 멀리 유배버리며 숙청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을 눈치챈 이방원에 의해서 이 사건은 개혁파 대부분을 제거하지 못하게 된다. 이 행동이 불씨를 일으켜 이방원은 정몽주가 역성혁명의일에 가장 방해가 된다 생각했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제거하기에 이르게 되고, 이는 조선을 세우는 시발점이 된다.

 

※ 선죽교 사건을 이야기 할때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가 유명하다. 이 두개의 시조에서 당시 둘의 마음과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 태조는 쓸내용이 너무 많네요.. 조선 건립은 2탄에서...

 

단심가

"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하여가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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