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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뜻과 원인, 프랑스는 왜 강화도에 왔고 무엇을 가져갔을까

v슈뢰딩거 2026. 8. 24. 01:36

조선 후기에는 서양 함대가 강화도로 들이닥친 사건이 두 번 있었습니다.

 

1866년 프랑스가 온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이 온 신미양요입니다. 둘을 헷갈리는 분들이 많은데 성격이 꽤 다릅니다.

 

신미양요에서 조선은 크게 졌지만 상대가 목적을 못 이루고 돌아갔고, 병인양요에서는 조선이 실제로 격퇴했습니다.

 

그런데 잃은 것은 병인양요 쪽이 더 큽니다.

 


병인양요는 무슨 뜻일까

이름이 사건의 시점과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 병인(丙寅)은 육십갑자로 따진 해의 이름으로, 여기서는 1866년
→ 양요(洋擾)는 서양이 일으킨 소란이라는 뜻

 

신미양요와 이름 짓는 방식이 같습니다.

 

병인년에 일어났으니 병인양요, 신미년에 일어났으니 신미양요입니다. 5년 간격을 두고 프랑스가 먼저, 미국이 나중에 왔다고 기억하시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왜 왔을까

발단은 같은 해 봄의 병인박해입니다. 조정이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면서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처형됐습니다.

 

프랑스는 자국민이 살해됐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다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서양 열강은 조선과의 통상을 원했고, 무력을 보여 협상 테이블을 만드는 방식은 이 시기에 흔한 수순이었습니다.

 

조선의 대응은 강경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과의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노선이었고, 이 사건 이후 그 태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집니다.


강화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극동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군함 7척에 병력은 요코하마에 주둔하던 해병대를 포함해 1,200명이 넘었습니다.

 

프랑스군은 갑곶진을 점령해 한강 수로를 막고, 이어 강화성을 함락합니다. 수도로 들어가는 물길을 쥔 셈이라 조정으로서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은 어떻게 막았을까

반격은 두 곳에서 나왔습니다.

→ 문수산성에서 한성근이 프랑스군을 공격해 27명의 사상자를 냄
→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500명을 이끌고 프랑스군 160명을 격퇴

 

특히 정족산성 전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양헌수는 야음을 틈타 병력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 매복했고, 지형을 모른 채 올라온 프랑스군은 전사 6명에 부상 30명의 피해를 입고 물러났습니다. 조선군 피해는 전사 5명 안팎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작은 전투입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에게는 이 패배가 뼈아팠습니다. 소규모 원정대로 왔기 때문에 병력 손실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고, 겨울이 다가오는 데다 보급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달 남짓 만에 함대를 돌립니다.

 


무엇을 가져갔을까

문제는 철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강화성을 떠나면서 관아에 불을 지르고 보관돼 있던 물건을 실어 갑니다.

→ 은괴 19상자
→ 각종 무기와 보물
→ 그리고 외규장각에 있던 왕실 도서

 

외규장각은 정조가 강화도에 세운 왕실 기록 보관소입니다. 여기에 의궤가 있었습니다.

 

의궤는 왕실의 국가 행사를 그림과 글로 상세히 기록한 책으로, 조선이 얼마나 꼼꼼한 기록 국가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그중에서도 외규장각 의궤는 왕이 직접 보던 어람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가치가 특별했습니다.

 

전투에서는 이겼는데 기록은 잃었습니다. 그것도 불에 탄 것이 아니라 배에 실려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의궤는 돌아왔을까

돌아왔습니다. 다만 조건이 붙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 297책은 2011년 한국에 왔습니다. 약탈된 지 145년 만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식이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하는 대여였습니다.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습니다.

 

이 구조가 낯설지 않다면 수자기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가져간 어재연 장군기도 2007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고, 2024년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빌려 온 물건은 주인이 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갱신이 이어지는 한 국내에 머물지만, 이것을 완전한 환수라 부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병인양요는 1866년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입니다.

 

로즈 제독의 군함 7척이 강화성을 점령했으나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에 격퇴당해 한 달여 만에 철수했습니다.

 

다만 철수 과정에서 외규장각의 의궤 297책을 약탈했고, 이 책들은 2011년 145년 만에 돌아왔지만 소유권은 프랑스가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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