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역사박물관에 오래 걸려 있던 커다란 깃발이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4미터가 넘는 삼베 천에 글자 하나가 크게 쓰여 있는 물건입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2024년 3월 미국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빼앗겼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떠난 이 깃발의 사정을 정리했습니다.
수자기는 무슨 뜻일까
수자기(帥字旗)는 글자 그대로 帥라는 글자를 새긴 깃발입니다. 이 한자는 장수,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용도는 분명했습니다. 군영의 뜰이나 진영 한복판에 세워 이곳에 총지휘관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병사들에게는 어디를 보고 싸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준점이었고, 적에게는 지휘부의 위치를 드러내는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깃발이 서 있는 동안은 지휘관이 살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어재연 장군기의 크기는 가로 4.13미터, 세로 4.30미터입니다. 재질은 삼베입니다.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천을 장대에 매달아 세웠다는 뜻입니다. 이만한 크기의 조선시대 장군 깃발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 하나뿐입니다.

어떻게 미국으로 갔을까
1871년 신미양요 때입니다.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침공했고,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맞붙었습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습니다. 조선군은 300명 넘게 전사했고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도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 전사자는 3명이었습니다.
미군은 광성보를 점령한 뒤 이 깃발을 내려 가져갑니다. 전리품이었습니다. 깃발은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으로 들어가 그곳에 보관됩니다.
136년 만에 어떻게 돌아왔을까
깃발의 존재가 알려진 뒤 오랫동안 반환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협상 끝에 2007년 10월, 양측이 상태를 함께 점검하고 대여협정서에 서명합니다. 10월 18일 워싱턴에서 항공편에 실린 깃발은 다음 날 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1871년에 떠난 지 136년 만이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자리는 몇 번 옮겨졌습니다.
→ 2008년 3월 특별 전시로 처음 공개
→ 같은 해 5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으로 이관
→ 2009년부터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보관
빼앗긴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광성보가 있는 강화도입니다.
왜 반환이 아니라 대여였을까
여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깃발은 돌아왔지만 우리 것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측은 영구 반환은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전리품으로 취득한 물품이 국유재산으로 등록돼 있어 소유권을 넘기려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이 장기 대여입니다.
→ 처음에는 2년 대여로 시작
→ 이후 10년, 5년, 2년씩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갱신
→ 소유권은 계속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음
돌려받았다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쓰였지만, 법적으로는 빌려 온 것이었습니다. 빌린 물건은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합니다.

지금 수자기는 어디 있을까
2024년 3월, 깃발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동아시아 특별전에 전시하겠다며 반납을 요청했고, 대여 계약상 거절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국내에 머문 기간은 17년 가까이였습니다.
전시는 여러 해에 걸쳐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강화역사박물관의 그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소유권을 넘겨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대여 방식이 굳어진 상태에서 협상의 지렛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현실입니다.
문화재 환수 문제에서 대여와 반환의 차이는 이렇게 갈립니다. 대여는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수자기는 장수를 뜻하는 帥를 새긴 대장의 군기이고 어재연 장군기는 현존 유일의 조선시대 장군 깃발입니다. 1871년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갔고, 2007년 136년 만에 돌아왔지만 소유권 이전이 아닌 대여였습니다.

17년 가까이 강화도 등지에서 전시되다 2024년 3월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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