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사도세자 이야기를 했는데, 그 비극의 한가운데에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살려달라 울부짖던 열한 살의 세손이죠.
그 아이가 훗날 조선 최고의 개혁 군주, 정조가 됩니다. 드라마 '이산'과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익숙한 그 정조요. 실제로는 어떤 왕이었을까요?

뒤주 앞에서 울던 소년
1762년, 열한 살의 세손은 할아버지 영조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었고, 소년은 그 장면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갑니다.

게다가 그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까지 썼습니다. 아버지가 죄인으로 죽었으니, 그 아들의 왕위 계승은 늘 위태로웠죠. 영조는 정조를 일찍 죽은 다른 아들(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정통성 문제를 덮으려 했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1776년, 마침내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 일성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억눌러온 아버지의 이름을, 왕이 되어 정면으로 꺼낸 것이죠. 이후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겨 정성껏 모십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그의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정조의 개혁... 규장각과 수원 화성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웁니다. 왕실 도서관이자, 개혁 인재를 길러내는 두뇌집단이었죠. 또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만들어 왕권을 든든히 받쳤습니다.

그의 개혁이 집약된 곳이 바로 수원 화성입니다. 1794년부터 2년여에 걸쳐 쌓은 둘레 5.74km의 이 성은, 거중기 같은 새로운 기술로 지어졌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묘를 곁에 두고 새로운 정치를 펼칠 도시를 꿈꾼 것이죠.
신분을 뛰어넘다... 서얼을 등용하다
정조 개혁의 상징 중 하나는 '사람을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신분에 막혀 벼슬길이 좁았던 서얼 출신들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합니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같은 이들이죠. 실력만 있으면 신분을 뛰어넘어 쓰겠다는 파격이었습니다.

상업에서도 신해통공을 통해 특정 상인의 독점권을 풀어, 백성이 좀 더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독살설
개혁이 한창 무르익던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종기를 앓다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하는데, 워낙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오늘날까지 독살설이 따라붙습니다.
그의 개혁에 위협을 느낀 반대 세력이 손을 썼다는 것이죠.

진실이 무엇이든, 그의 죽음과 함께 조선의 개혁도 멈춥니다. 뒤를 이은 순조가 겨우 열한 살이었기에, 외척이 권력을 쥐는 세도정치가 시작되거든요.
정리
정조는 뒤주 앞에서 울던 소년에서,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연 개혁 군주가 된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비극을 딛고 새 시대를 꿈꿨지만, 그 꿈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저뭅니다.
드라마가 그리는 완벽한 성군의 이미지 뒤에는,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와 싸운 한 인간이 있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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